
사람을 죽이는 영화가 아닌 살리는 영화. <헥소 고지>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전쟁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롭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간다는 내용이 처음부터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는 전쟁터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사선을 넘나든 한 인간의 이야기. 이 영화는 내가 알고 있던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간 남자—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선택
대한민국 남자라면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군대에 입대하면 총기 다루는 법을 배우고, 각 개인에게 총기가 지급됩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서 총 없이 싸운다는 것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은 결국 적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누구나 정답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스몬드 도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사건과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살생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집총을 거부합니다. 그러면서도 조국을 지키기 위한 의무를 다하고자 의무병으로 입대합니다. 총 대신 구급함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훈련소에서 동료들과 상관들에게 비겁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모진 박해와 군사재판의 위기까지 겪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의 선택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국과 동료들에게 헌신하겠다는 깊은 신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모두가 틀렸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신념—폭력의 전쟁터에서 빛난 인간다움
영화 중반부터 펼쳐지는 헥소 고지 점령전은 전쟁의 참혹함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 포탄이 빗발치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지옥 같은 현장에서 도스는 총 대신 구급함을 들고 부상병들을 찾아 헤맵니다. 아군이 퇴각한 뒤에도 홀로 전장에 남아, "한 명만 더 구하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를 올리며 밤새도록 부상병들을 한 명씩 로프로 묶어 절벽 아래로 내려보냅니다.
이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는 전쟁터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그 신념이 가슴 깊이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든 개인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든,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의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그를 비겁자라 비난했던 전우들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도스를 목격하며 진정한 용기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도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도스는 결국 홀로 75명의 생명을 구해냅니다. 총 없이도 전장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를 이 영화는 몸소 증명합니다.
전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역사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단어가 되기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영웅도 무명용사도 모두 그 안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돌아옵니다. 데스몬드 도스가 총 없이 전장에서 생명을 구한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전쟁의 본질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실화라는 사실이 이 영화에 더욱 큰 무게를 부여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실제 인물 데스몬드 도스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 순간,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더욱 깊은 여운으로 남습니다.
지구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역사에서만 배울 수 있는 단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데스몬드 도스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그리고 그의 신념처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마음이 전쟁터에서조차 빛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헥소 고지>는 전쟁 영화이지만 전쟁을 찬양하지 않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전쟁 스펙터클 속에 숨겨진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조명하며, 진정한 영웅이란 파괴가 아닌 수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임을 증명해냅니다. 총을 든 군인의 이야기가 아닌, 총 없이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린 남자의 이야기. 꼭 한 번은 봐야 할 영화입니다.
출처: 영화 헥소 고지